협동조합으로 보는 일본의 돌봄모델
- 지역과 함께하는 복지를 꿈꾸는 나라코프의 협동복지회 -
- 이은선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국제협력파트/ esleegoh@naver.com)
나라현 위치 및 지도
일본 아스카문명의 꽃을 피웠던 도시 나라(奈良)는 들쑥날쑥 불규칙하게 솟아있는 스카이라인에 익숙한 서울과는 달리 나지막하고 고즈넉하다. 일본 관서지방의 중심도시 오사카역에서 킨테츠선(近鉄線)열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리면 나라를 만날 수 있다.
나라는 일본에서 거주 가능 면적지가 가장 낮은 현(県)이다. 80%가 산지이고 특히 남쪽에 집중해 있어 인구의 90%가 북서부 나라분지에 모여 산다. 그 곳에서 나라코프를 이용하는 조합원은 26만 명(세대 수 58만 세대, 인구는 130만 명)으로 조직율이 44%(2015년 3월 현재) 정도 된다. 두 명 중 한 명은 나라코프의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고령화
나라코프가 처음 복지사업을 시작한 것은 16년 전이다. 2000년대 개호보험제도 사회가 고령화 핵가족화 되어 가면서 개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회 전체에서 돌봐주기 위해 2000년에 시행된 제도이다. 2000년대 *개호보험제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일본의 복지는 대부분 가족, 그 중에서도 특히 장남의 며느리의 몫이었다.
일본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라 할 정도로 빨랐다. 65세 인구가 7%를 넘어서는 사회를 고령화 사회라고 하는데 일본은 1970년대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1994년에 65세 인구가 14%를 넘어서는 고령사회가 되었다. 2015년 현재는 고령화율 23%의 초고령 사회다. 65세 인구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급속한 고령화는 여성의 부담을 높여주었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지면서 일과 돌봄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여성의 부담은 날로 늘어갔다. 70년대와 80년대 비약적으로 성장한 일본 생협에서 주축인 여성들의 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개호보험 : 사회가 고령화 핵가족화 되어 가면서 개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회 전체에서 돌봐주기 위해 2000년에 시행된 제도이다.
**초고령화 사회 : 65세 인구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조합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시작한 복지사업
나라코프도 2000년 개호보험제도가 시작되기 전부터 조합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합원 사이의 *서로돕기모임(組合員助け合い会)이나 어르신 식사모임으로 출발하였는데 이후 시설복지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이 복지사업을 담당할 **(사)협동복지회를 만들었다.
처음 복지사업을 시작할 때는 왜 복지사업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복지시설이 들어설 지역에서는 복지시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복지시설 건설을 거부하는 반대결의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라코프는 1996년 제23차 정기총회에서 복지사업을 추진할 협동복지회를 건설할 것을 결의하고 ‘복지원년’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 복지사업은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서 함께 해나간다고 방향을 정하고 조합원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일본 생협의 복지사업을 보면 모체가 되는 생협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고 시설을 지어 복지사업을 해 가는 형태도 있지만 나라코프처럼 조합원의 결의를 결집해 모금을 통해 시설 건설비용을 마련하고 학습회를 통해 복지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주민이 참가하는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지역에서 조합원을 만나 복지시설을 홍보하고 모금에 참여해 줄 것 권유하는 활동을 펴는 곳도 많았다. 또 이 시설이 어떤 시설이 되면 좋을지, 내부에 어떤 시설이 들어가면 좋을지,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등을 지역에 나가 설문을 통해 지역의 요구를 구체화해나간 생협들도 있다.
*서로돕기모임 :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생협이 코디네이터가 되어 서로 연결해 주는 유상자원봉사 모임. 1983년 코프고베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생협으로 확대되어 있다.
**(사)협동복지회 : 당시에는 개호보험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법인이 필요했다.
조합원이 주체가 되어 지역으로 나가 직접 주민의 목소리를 모으다
나라코프도 직접 공급차량에 동승하여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모금을 호소했다. 총 122명이 750회에 걸쳐 공급차량에 동승해 지역으로 나가 주민을 만났다. 반대결의를 한 자치회에 직접 찾아가 조합원, 시민들을 만나면서 모금과 설명, 홍보를 해 나가갔다. 이런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1년 만에 반대결의를 했던 지자체는 그 결의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4년에 걸친 모금운동에는 총 5만 명이 참가하여 3억 7천만 엔을 모금할 수 있었다. 이런 조합원의 염원을 모은 복지시설 아스나라원은 1999년 9월에 완공되었다.
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나라코프는 4년에 걸쳐 모금운동을 펼쳤다 ▶
이전부터 살던 지역에서, 내가 살던 집에서 계속 지내면서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이며 발상이지만, 문제는 지역에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나 인력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지역으로 부담을 전가해 버리면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돌봄이나 간호에서 지역을 강조하는 이유는 방대해지는 복지예산 때문이다. 일본의 1년 국가예산은 96조 엔이며 국가부채가 1천조 엔에 이른다. 그 중 개호 예산이 현재 9.9조인데 2025년에는 23조로 늘어날 것이다. 의료 예산도 40조 넘고 있고 2025년에는 54조 엔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 예산 96조 가운데 세금 수입은 50조 정도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부채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 복지비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현재 일본의 고령화율은 23% 수준인데 단카이세대(베이비붐 세대)가 초고령화 세대 즉 75세를 넘어가는 2025년이 되면 일본의 고령화율은 3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10년,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에서 지원자를 줄여야 할 정도로 개호보험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있다. 이로 인해 일본정부는 급부범위 적정화, 서비스 효율화와 중점화를 꾀하여 보험료 증가를 억제하고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지역에서 개호를 지원하는 ‘익숙한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 협동복지회의 아스나라원 (출처 : 아스나라원 홈페이지)
일본정부의 복지 방향-지역포괄케어시스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란 지역을 어르신 걸음으로 20~30분 이내에 걸을 수 있고, 인구는 1만 명 규모, 소, 중학교 1개가 있는 정도의 단위로 나누어 이것을 일생생활권역이라 하여 그 안에서 고령자를 중심으로 5가지 서비스 즉 돌봄, 의료, 예방, 주택, 생활지원 서비스를 정비해 어르신들이 멀리 떨어진 복지시설에 들어가지 않고도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지역포괄케어시스템라고 하는 것은 익숙한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점점 고령자, 독거세대, 2인세대가 늘고 있는데 이런 지역에서의 재택 개호를 지원해 줄 개호담당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사단복지법인 협동복지회의 복지모델 만들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 기다려서는 암울한 미래만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지역에서 생협이 만들어 온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이용한 새로운 복지의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이 사회복지법인 협동복지회이다. 협동복지회는 아스나라안심시스템이라고 하는 안심케어시스템과 안심지원시스템을 합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어 지역 안에서 복지모델을 만들어 간다.
안심케어시스템은 돌봄 대상자에게 개호보험사업을 해나가는 것이고, 안심지원시스템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지원시스템이다. 아스나라안심시스템의 특징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만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포함하여 고립되거나 탈락되지 않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협동복지회가 하는 있는 아스나라안심시스템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방문돌봄 등 지역으로 나가는 서비스와 데이서비스, 단기체재, 거주형 노인요양시설 등 이용자가 직접 찾아오는 서비스, 어르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살롱, 식사모임 등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 그리고 TV전화를 통해 24시간 365일 수시로 점검하는 서비스를 통해 촘촘하게 돌봄지원을 하고 있다. 정기순회서비스라 불리는 TV전화 서비스는 현재 100대의 전화가 설치되어 일본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일상생활영역 전체에 책임을 지는 아스나라안심케어시스템은 결국은 복지를 통한 지역만들기며 지역공헌활동이라 할 수 있다. 협동복지회는 산하에 14개의 복지시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시설을 중심으로 지자체, 주민들과 협력하여 각 지역에 아스나라안심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스나라원 활동사진
지역이 함께 만들어가는 복지를 통한 마을 만들기
협동복지회는 지역의 복지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생협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며, 지자체, 복지사업자, 주민이 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협동복지회는 UR 도시재생기구(공단주택 관련 기구)와 협력하여 새로 짓는 공단주택에 TV전화를 설치한다거나, 화장실, 목욕탕을 협동복지회가 원하는 사양으로 짓도록 하고 있다. 또 티비전화는 전화 회사 NTT서일본과 협력하여 개발한 것이다. 2015년에 신축한 본부 사업 건물 아스나라 하이츠 코이노쿠보를 보면 나라코프와 지역 단체의 협동이 잘 드러난다. 나라코프가 생활재를 공급하고 있고 나라코프의 서로돕기 모임이 유상 자원봉사를 통해 가사지원, 이동지원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협동복지회가 안심케어시스템을 통해 돌봄을 지원하고 있으며 병이 나면 나라현의료복지생협의 진료소를 통해 진료를 받고 있다.
2015년 10월에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설명을 해주신 사회복지법인 협동복지회 무라키 마사시(村木正)이사장님은 한국의 복지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보여준 일본을 추월하여 한국이 고령화되고 있다. 2014년 현재 일본의 고령화율은 23%, 한국은 12% 수준이지만 2025년이 되면 일본과 한국 모두 고령화가 35%에 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남은 10년 동안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책을 세워두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생협과 같은 조직에서 복지부분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일본의 복지제도 현황>
2000년 4월 개호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실시 7년째가 되는 2007년에는 당초 약 150만 명이었던 이용자가 재택서비스를 중심으로 200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개호보험서비스는 국민 사이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개호비용이 증가하고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개호보험은 5년에 한 번씩 개정되기 시작해 2015년 4월에 3번째 개정이 이루어졌다.
3차 개정의 가장 핵심은 요지원 1, 2를 개호보험사업에서 제외하여 시 사업으로 넘긴다는 것이다 일본의 개호보험은 요지원 1, 2단계, 요개호 1, 2, 3, 4, 5단계 총 7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는 치매 환자 등 중증 개호가 필요한 어르신들을 위한 거주형 노인요양시설(特別養護老人ホーム) 입주자격을 요개호 3, 4단계부터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대기자 52만 명 중 17만 명이 입소신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째는 10%였던 개인부담금을 소득에 따라 20% 부담으로 바꾸었는데 전체 20% 부담으로 바꾸려는 초석이라 보고 있다.
3차 개정의 방향을 보면 일본정부의 앞으로의 복지방향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현재 일본은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이 80%이다. 이것을 재택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또 개호보험 지원 대상도 요개호 3, 4, 5로 응축하고 나머지는 지역으로 돌려 지역 내의 서로돕기 방식이나 자원조직을 이용하여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정부가 추구하는 돌봄과 간호의 방향은 익숙한 지역에서 계속해서 살게 하는 것, 즉 의료에서 개호로, 시설에서 재택(지역)으로 돌봄 제공자를 바꾸려는 것이다.
▶ 협동복지회 홈페이지 : http://www.asunaraen.or.jp